우리 주위의 흔한 생활용품들은 그 하나하나에 과학․기술의 역사가 자리잡고 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지혜가 우리가 항상 사용하고 있는 종이나 라디오같은 것들에 녹아 있고, 가장 기본적인 과학원리가 어린이 놀이동산의 놀이기구에도 스며 있다.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린 텔레비전, 냉장고, 자동차, 컴퓨터 등등은 그야말로 긴 세월 동안 쌓여온 인류의 과학적 지식의 산물이다. 또한 지금도 현재의 과학원리가 적용되어 끊임없이 개량되어 가고 있는 발명진행중인 것들이다.
이와같이 과학은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에도, 과학은 어려운 것, 복잡한 것으로 느껴지고 있다. 사실 과학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낯설은 수식과 복잡한 실험장치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과학은,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과학자들이 연구실이나 실험실에 처박혀서 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면 그 당시의 과학은 우리에게 아주 초보적인 수준으로 느껴질 것이다. 지금은 누구나 알고 있는 당연하고 상식적인 것들조차 그들은 전혀 모르고 있을 것이고, 우리가 호주머니에 가지고 있는 간단한 도구들조차 신비한 마법의 도구로 여길 것이다.
따라서 옛날 사람들이 당시의 과학수준에서 새로운 지식과 새로운 발명품들을 하나씩 하나씩 늘려 나가는 과정을 살펴본다면 과학이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인류가 어떻게 자연의 신비를 알아내고, 어떻게 새로운 것들을 발명해왔는지를 정리한 것이다. 옛날 사람들이 고민하고 씨름했던 문제들, 그리고 그들이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새로운 지식을 획득하게 된 과정들을 살펴봄으로써 쉽게 과학의 세계에 다가갈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과학이 발전해 온 과정을 전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과학 전반에 대해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도록 했다. 특히 과학사의 중요 사건, 즉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들을 중심으로 그것이 있었던 배경과 과정들을 설명함으로써 과학사 전체를 조망해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새로운 과학이론들이 정립됨에 따라 그것들이 어떻게 실용화되어 새로운 발명품으로 등장하게 되는가를 살펴봄으로써 과학과 기술의 발달을 연계하여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인류 최초의 과학적 사건은 불의 이용이다. 이후 상당한 세월 동안 띄엄띄엄 중요한 과학적 발견들이 나타났다. 그러다가 중세 말 과학혁명 이후부터는 우후죽순처럼 과학과 관련된 이론들이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나타난다.
1900년대에 들어서는 과학이 더욱 세분화되어 발달하게 되면서,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같은 과학자들조차도 전공분야가 같지 않으면 문외한이 되어 버리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하나의 책에서 이러한 방대한 과학사건 모두를 다룰 수는 없을 것이다. 필자는 한국과학문화재단이 선정해서 발표한 ‘인류과학 100대 사건’을 이 책의 기초로 삼았다. 이는 새천년을 앞두고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자는 의도로 여러 전문 학자들에 의해 선정된 것으로, 구석기 시대 불의 이용에서부터 최근 있었던 복제양 돌리의 탄생까지 그야말로 과학사에서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사건들이 망라되어 있다.
하지만 이 사건들을 일정한 체계로 정리하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류과학 100대 사건’에는 중요한 과학 이론의 정립이나 새로운 발명품의 등장과 같이 과학과 관련된 것들뿐만 아니라, 언뜻 보기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나 과학적 사고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사건들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과학을 이루는 각 분야들, 즉 물리학, 화학, 천문학, 생물학 등이 처음부터 나뉘어져 발전한 것도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서 세분화되어 독자적인 학문으로 체계화되는 경향이 있어서 분야별로 구조화하는 것도 간단하지 않아, 결국 과학 발전의 흐름을 알 수 있도록 시대순으로 정리하기에 이르렀다.
시대순으로 정리함에 있어 비중있는 과학이론이 등장한 때는 그 이론이 정립되어 있는 논문이나 책이 발표된 시점을 잡았으며, 자동차의 발명이나 냉동법의 발달 등과 같이 딱 한 순간을 꼬집어서 최초의 발명 시기를 잡기 어려운 것은 그 발명품이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가능하게 된 시점을 발명시기로 잡았다.
또한 이론적으로 설명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항목은 길게, 발명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은 간단하게 짚고 넘어갔는데, 물론 내용의 길고 짧음이 사건의 중요도가 아님을 밝혀둔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이런 저런 책을 읽다가 호주의 과학저술가 마거릿 버트하임의 『피타고라스의 바지』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서론 첫머리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열 살 때, 나는 신비적 체험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일을 겪었다. 수학시간에 우리는 원에 대해 배우고 있었는데, 선생님은 우리 힘으로 이 특이한 도형의 비밀을 알아내 보라고 하셨다. 그것이 바로 파이(π)라는 수였다. 원에 대한 모든 것을 π로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어린 나로서는 마치 우주의 크나큰 보물이 막 계시된 것처럼 느껴졌다. 원은 어디에나 있었고, 각각의 중심에는 그 신비한 수 π가 있었다. ― 해와 달과 지구의 모양에도, 버섯과 해바라기와 오렌지와 진주에도, 시계의 문자판과 단지와 전화 다이얼에도. 그 모든 것은 π를 공유하고 있었지만, π 또한 그 모든 것 너머에 있었다. 나는 매혹되었다.
필자는 과학교사이다. 13년 넘게 과학교사를 했으니, 필자로부터 과학을 배운 학생이 족히 수 천 명은 될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생각하면 부끄러워진다. 모름지기 교사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학문의 무한한 세계를 학생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과학교사라면 당연히 자연에 대한 호기심, 자연에 대한 포용력,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볼 수 있는 열려진 사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연에 대한 매혹,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버트하임이 느꼈던 류의 신비로움은 느끼지 못할지라도, 역사 속에서 등장하는 과학이론들이 당시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충격적인 것이었으나, 동시에 뿌리칠 수 없는 매혹이 되어, 밤낮없이 몰두하게 하는 열정을 주었다는 것도 이해하게 되었으면 한다.
출판사로부터 원고 부탁을 받고, 개인적으로 과학사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으나, 직업이 교사이니 만큼 중․고등학생들이 읽을 수 있는 수준으로 쓰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정리하기에 이르렀다.
많은 분들의 자문을 받아가며 고치고 또 고쳤으나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독자들의 따가운 비판과 지적을 기대한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이 책을 쓰기 위해 보았던 많은 참고서적들의 저자들께 감사드린다. 그 분들의 앞선 수고와 노력이 없었다면 이 책은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열심히 도서관을 다니며 자료를 찾아준 동생 정희, 바쁜 중에도 귀중한 시간을 내어 부족한 원고를 검토해주신 전남대학교 박종원 교수님, 경북대학교에서 과학사를 강의하고 있는 친구 조숙경, 이론물리학을 전공한 친구 지정영, 모든 것을 이해해 주는 남편, 건강하게 잘 커주는 아이들, 나의 청춘과 에너지를 쏟아 부었던 수없이 많은 제자들, 그리고 학민사 직원 여러분들,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2000년 5월
이 정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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