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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일본
지은이 : 최천기
가  격 :   12,000원
ISBN : 89-7193-172-8 (03910)
초판발행일 : 2005년 9월
2005년은 을사늑약 체결 100주년, 일제로부터의 해방 60주년, 국교정상화 40주년의 해이다. 그러나 일본 지도층 인사들의 일제시대 만행의 합리화 망언 등 끊임없이 이어지는 ‘신국일본‘이라는 허황된 역사관이 한일간의 관계를 더욱 꼬이게 한다. 이런 일본의 역사왜곡의 기본적인 사상은 신국사상에 기초한 일본중심주의, 일본우월주의 이다. 그러므로 역사적인 사실도 학자(특히 국학자), 역사가, 작가, 종교가 등 다양한 분야의 엘리트들의 일사불란한 공조체제로 실제와 다르게 변형되기도 한다.
이 책을 통해 한일간의 가장 민감한 독도 문제, 교과서 왜곡,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및 일본의 우경화된 지도층의 반복적인 망언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제1장 날조의 장에서는 일본에게 불리한 역사적 사실을 교묘하게 왜곡시키거나, 체제유지와 대중선동을 위해서 지나친 미화와 과장을 일삼은 사례를 볼 수 있다. 우리 민족의 영원한 정신적 지주인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사건도 제3의 범인설을 주장하여, 안중근 의사의 거사의 의미를 축소시키려 한다.
일본 근대화의 초석이라는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통해, 메이지 유신이란 프랑스나 러시아의 혁명처럼 밑으로부터의 혁명이 아닌 단순히 사리사욕과 집단 이기주의에 의한 막부체제의 전복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일본의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재인 츄신구라(충신장)와 미야모토 무사시의 이야기를 통해서 극작가나 소설가에 의해서도 역사적 진실이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제2장 원조의 장에서는 일본인의 잠재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신국 일본‘의 역사관에 의한 황당무계한 주장을 알아볼 수 있다.
우선 전 세계에서도 특이한 ‘선민의식‘을 갖고 있는 유태인과 동격내지는 우월하다는 신념에서 나온 일·유 동조론의 여러 가지 사례를 볼 수 있다. 유럽인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며 그들의 유전자에 황화론의 아픈 기억을 각인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세계 최대의 정복자 징기스칸이 본래 일본인 이었다는 황당무계한 주장도 있다.
그리스의 역사가 필론의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서 유일하게 현존하는 ‘기자의 피라미드‘ 역시 6천년전 일본인의 기술지도로 만들어졌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또한 고대 수메르의 설형문자나 중국의 한자, 영어의 알파벳은 물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우리의 한글까지도 일본의 신대문자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주장을 살펴 본다.
제3장 도래의 장에서는 메이지 유신후 국제무대에 등장한 일본의 부국강병, 군국주의화와 함께 <다케우치 문서> <미야시타 문서> 등 위서의 출현과, 이 위서들의 핵심주제인 일본중심주의의 결과, 예수, 모세, 양귀비, 서복 등 역사상 유명한 세계의 위인들이 일본을 찾아왔다는 주장을 살펴볼 수 있다.
아오모리현 신고무라 헤라이라는 작은 마을에 예수의 무덤과 동생 이스키리의 무덤이 있다는, 우리나라 1천만 기도교인들이 들으면 기절초풍을 할 황당한 주장도 있다. 모세 5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저자 및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전수받았다고 하는 모세가 사실은 일본에 와서 천황으로부터 십계를 받고 결혼 후 로마를 건국하여 1인 2역의 역사적 대과업을 완수했다는 기가막힌 주장도 알 수 있다.
동양의 대표적 미인 양귀비도 안록산의 난때 죽은 것이 아니라 일본으로 망명와서 여생을 마쳤다는 주장과 역시 진시황의 불로초를 구해 오겠다는 핑계로 엄청난 재물과 인력을 얻어 일본으로 귀화했다는 서복 이야기도 살펴볼 수 있다.
‘황당한 인간‘은 우리나라에도 있고 세계 어디에도 있다. 그러나 그 ‘황당함‘이 개인적 품성과 삶에만 개재되어 있다면 그리 문제가 될 것도 없다. 문제는 ‘일본인들의 그 황당함‘이 어찌어찌 지나다 보면 정설이 되고 사실이 되고 역사가 되고 비수가 되어 우리 가슴을 헤집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들을 그냥 재미있는 읽을거리라고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보라, ‘나일본부설‘ 일본의 역사 왜곡은 그 근본이 황당함 아닌가?
 
         
2005년 을유년(乙酉年)은 새해 벽두부터 ‘닭의 해‘답게 시끄러웠다. 2005년은 한·일간에도 을사늑약(乙巳勒約) 체결 100주년, 일제로부터의 해방 60주년, 국교정상화 40주년의 해인데다 ‘욘사마‘로 대표되는 최근의 한류 열풍으로 어느 때보다 한·일간의 우정이 깊어질 것으로 기대되는 터였다.

그러나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독도)의 날‘ 조례 제정, 우경화 역사교과서 채택, 일본 지도층 인사들의 일제시대 만행의 합리화 망언 등 끊임없는 ‘한국민 열받게 하기‘캠페인으로 양국간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어째서 광복 6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러한 일이 계속 반복되어야만 하는가? 한마디로 일본인의 잠재의식 속에는 ‘신국일본(神國日本)‘이라는 허황된 역사관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중화민족, 유태인, 미국의 WASP(앵글로색슨·기독교도·백인), 독일의 나치즘 등 민족마다 우월사상이나 선민의식을 갖고는 있다.

그러나 일본인의 역사관은 독특하다. 본디 역사란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각 시대마다의 승자 또는 지배자의 세계관이나 가치관에 따라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이나 평가가 달라진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5·16, 10·26사건, 5·18광주 민주항쟁 등도 불과 십수 년 전과 지금의 평가는 많이 달라졌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에는 분명히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가해자의 입장인데도 인류 최초의 원폭경험 민족이라는 핑계로 마치 피해자처럼 행세하거나, 전쟁에 패했으면서도 패전(敗戰)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종전(終戰)이라고 하는 얄팍한 짓을 하고 있다. 그러니 진심으로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은 물론 적절한 배상도 이루어질수 없는 것이다.

일본의 경제·군사 전문가인 하세가와 게이타로가 쓴 『사요나라 아시아』(1986)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

‘아시아라고 하는 거대한 쓰레기 매립장 한 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초근대적인 고층빌딩이 일본이다. 고층빌딩 안에는 자유로운 생활이 있으나, 쓰레기 매립장에는 부와 자유도 없다.‘

그러나 아시아 여러 나라 중에서 한국과 대만만큼은 그래도 다른 아시아국에 비해 일본과의 격차가 작다고 추어주고 있으니 이를 영광스럽게 생각해야 할 지. 그런데 더욱 가관인 것은 그 이유가 바로 한국이나 대만 모두 일본의 오랜 식민지 경험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메이지 시대의 탈아입구(脫亞入歐: 아시아를 탈피하여 유럽으로 들어가자는 슬로건)이래 일본 지도층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인 것이다. 비유를 하자면 일본은 63빌딩이고, 기타 아시아국은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은 쓰레기 매립장 위에 세계적인 규모의 월드컵 경기장과 공원이 들어설 수 있음을 어찌 모르는가?

우리는 흔히 친일파라고 하면 매국노와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친일파에도 두 부류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단순히 일본의 문화 등에 공감을 하거나, 일본에 연고자가 많이 있어 일본에 호감을 갖게 되는 등 순수한 의미에서의 친할 친(親)자 친일파다. 이러한 친일파는 아무 문제없는, 아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권장할 만한 일이다.

문제는 또 하나의 친일파다. 친(親)이란 글자에는 친하다는 뜻외에 ‘오야‘라고 발음을 하면 부모, 조상, 또는 계 모임의 계주, 화투, 트럼프 놀이의 선을 의미하기도 한다. 야꾸자 세계에서 조직의 두목을 ‘오야붕’이라고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오야 친일파‘란 일본을 자기 부모나 조상처럼 모시고 받든다는 반민족 분자를 말한다.

바로 이러한 ‘오야 친일파‘들이 해방 이후 우리나라 지배층에서 권력을 휘둘러 왔기에 광복 60년이 되어도 일제 과거사 청산이라든가 독도 문제,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 등이 해결되지 못한 채 주기적으로 반복되어 온 것이다.

일본의 역사왜곡 전략은 알고보면 단순하다. 계속적인 반복이다. 일견 말도 안되는 황당무계한 주장이라도 각 분야의 전문가나 재야학자들이 번갈아가면서 극히 일부의 그럴듯한 이론이나 증거를 제시하며 주장하다 보면, 점점 더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사람도 나타나게 된다.

그 다음에 보잘것없는 새로운 이론이나 증거를 가지고 주장의 폭을 넓혀가다보면 어엿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며, 침략주위 또는 패권주의의 야욕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극우주의자 및 군국주의자들의 영토확장계획에 이용되기도 한다.

2005년은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7.29)이 맺어진 지 100년 되는 해이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란 미국­스페인 전쟁의 승리로 필리핀을 획득한 미국이 조선을 차지하려는 일본과 서로 상대방의 행위에 간섭하지 않기로 한 음험한 약속을 말한다.

오늘날 자위대의 해외파견과, UN의 상임이사국이 되어 궁극적으로 패권주의를 지향하려는 일본을 두둔하는 미국의 태도가 100년 전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째, ‘날조(捏造)의 장‘에서는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역사를 왜곡, 날조해내는 일본인의 역사관을 조명해 본다. 대한국인의 기상을 드높인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사건에 제3의 범인이 있다는 주장과, 일본 근대화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메이지 유신 주역들의 적나라한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일본 전통극 가부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츄신구라>가 300년이나 왜곡되어온 이야기, 일본 최고의 검객으로 만화나 소설로도 유명한 미야모토 사시의 가공 스토리가 어떻게 역사의 탈을 뒤집어쓰게 되었는가를 해부한다.

둘째, 일본의 고대문명이 세계 최고 문명으로서 세계 문명의 원조임을 주장한 ‘원조(元祖)의 장‘이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이라는 유태인과 동격이라는 일․유 동조론과 세계 최대의 원(元) 제국을 건설한 징기스칸이 일본인이었다는 주장, 그리고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우리나라 한글도 원조가 일본이었다는 기막힌 주장을 알아본다.

셋째, 일본인의 잠재의식 속에 있는 ‘신국 일본‘이 세계 문화의 중심이라는 과대망상적 사고에 기초한 세계의 역사상 유명 인물들의 일본 도래 주장을 소개한 ‘도래(渡來)의 장‘이다.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익히 배워온 예수, 석가, 모세, 양귀비, 서복 등의 일본 도래주장을 살펴본다.



필자는 비록 정식으로 역사학을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제법 길게 일본에 체류하면서 이러한 ‘황당한 일본 이야기‘를 보고 접하게 되었다. 물론 ‘한 인간‘ 우리나라에도 있고 세계 어디에도 있다. 그러나 그 ‘황당함‘이 개인적 품성과 삶에만 개재되어 있다면 그리 문제가 될 것도 없다. 문제는 ‘일본인들의 그 황당함‘이 어찌어찌 지나다 보면 정설이 되고 사실이 되고 역사가 되고 비수가 되어 우리 가슴을 헤집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들을 황당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볼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또는 그냥 재미있는 읽을거리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보라, ‘임나일본부설‘등 일본의 역사 왜곡은 그 근본이 황당함 아닌가? 꺼진 불도 다시 보라는 심정으로 이 글들을 읽는다면 감사하겠다.


2005년 10월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최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