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엽
1953년 1월 6일(양력)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서 출생하다.
1960년 3월 서울 혜화초등학교에 입학, 졸업하고, 1966년 보성중학교에 진학하다.
1972년 1월 보성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년간 대입 재수시절을 보내다.
1973년 3월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에 입학하고, 학내 서클 동호회(한국문제연구회 후신)에 가입하다.
1974년 4월 민청학련 사건이 일어난 직후, 사학과 1년 후배인 조형식과 함께 학내에 민청학련사건 조작 규탄 벽보를 붙인 일로 구속돼 5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되다. 이때 학교측에서는 9월에 가사휴학으로 처리해 주다.
1975년 2월 15일 형집행정지로 출옥하고, 4월 복교하고자 했으나 보류당하다.
9월 1일자로 제적처리당하다.
1977년 학원강사 생활을 하며, 대학 선후배들과 반독재 반유신 민주화투쟁의 선두에 서다.
1978년 여름 현 시국이 독재권력의 최후의 몸부림이라는 인식 하에 민주청년협의회(약칭 민청협, 회장 조성우)가 창립되면서 민청협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다.
1979년 11월 10일 민청협 세종로 사무실에서 조성우, 최열, 양관수, 이우회 등 8인운영위원회를 개최하다. 이 회의에서는 군정반대 대중집회의 한 방법으로 YWCA에서 위장결혼식을 계획하였던 바, 홍성엽은 신랑역을 자원하다.
11월 24일 예정시간보다 15분 가량 늦은 오후 5시 45분, 명동 YWCA 1층 강당에서 위장결혼식을 강행하다.(위장 주례 함석헌 선생) 결혼식은 ‘통대선거저지대회’로 전화되고, 대회 중 군인들이 난입하여 참석자 140여 명이 연행되었다. 민청협의 이우회, 양관수, 김경택 등은 현장에서 체포, 구속되고, 홍성엽은 일단 도피하다.
12월 도피생활 중 우연히 안국동에서 합승한 택시에 홍성엽의 담당 정보과 형사가
타고 있어, 바로 체포되고 구속되다.
1980년 1월 군법회의에서 5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대전교도소에서 복역하다.
7월 31일 감옥에서 복역하던 중 연세대에서 제적처분당하다.
1981년 3월 전두환의 대통령 취임 특사로 대전교도소에서 석방되다.
1983년 9월 30일 대학로 흥사단 건물에서 민주화운동청년연합(약칭 민청련, 의장 김근태)이 결성되고, 민청련 초대 총무로 활동하다.
1985년 5월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약칭 민통련, 의장 문익환)이 결성되고, 이후 민통련 홍보부장으로 일하다.
1985년 9월 신군부의 유화정책의 일환으로, 유신 이후 제적당한 학생들에 대한 전면 복학허용으로 연세대에서 재입학 허가가 나오다.
1986년 3월 연세대 사학과 2학년에 복학하다.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진보세력의 극심한 분열 양상에 실망하여 민중진영의 백기완 후보를 지원하다.
1988년 8월 15년만에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다.
1989년 2월 민족종교인 천도교에 입문, 정신수련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다.
1990년 2월 어머니 심순민(沈舜民) 타계하다.
1991년 천도교 종학대학원 자료실에 근무하면서 세계평화와 조국통일을 바라는 정신수련을 계속하다.
1992년 천도교의 사무직을 사직하고 수련에만 정진하다.
1997년 정신수련을 위한 단식과 고행을 계속하던 즈음 백혈병을 얻다.
1999년 10월 골수이식 수술을 받다.
2001년 투병 중에도 수련을 계속하면서 『경전으로 본 세계종교』의 「동학」편을 저술하고 출간하다.
2005년 10월 5일 죽음을 초월한 정신수련을 마치고, 투병 8년만에 타계하다.
2005년 10월 7일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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