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붓』 발간에 부쳐
나는 10대에 입문하여 붓 매는 일로 잔뼈가 굵었고, 어느덧 이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힘에 부치고 두려워 도망치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오늘까지 이 일에 매달린 것은 어떤 일로도 이 일을 내 삶에서 대체할 수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덕분에 나는 세상을 거꾸로 살았다. 선배 털쟁이들의 얘기를 따라서 100년 전, 혹은 1000년 전으로 돌아가기를 수없이 되풀이했다. 생활고가 저절로 따라붙었지만, 그럴수록 나는 이 일에 매달렸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일이 어려워서 다른 일을 했다면 나는 지금쯤 후회했을 것이다. 그만큼 붓 일은 나에게 운명이었다. 그 동안 붓 일을 하면서 아쉽게 생각한 것은 기록이 없다는 것이었다. 선배 털쟁이들도 귀동냥 눈동냥으로 얻은 것을 얘기해줄 뿐, 무엇 하나 분명한 근거를 내미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나의 길은 제자리걸음일 때가 많았다. 그렇지만 지난 과거는 그렇다 쳐도 내가 아는 붓 일에 관한 정보조차도 기록된 것이 거의 없어 아쉬움이 많던 차에 정진명 선생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좋은 인연이 되어 오늘 이와 같이 귀중한 책을 내는 일로 이어졌다. 정 선생이 넘겨준 원고를 읽으며 거기 그려진 나의 모습이 새삼 부끄럽기도 하고 좀 더 치열하게 살지 못한 순간들도 생각나 앞으로 더욱 정진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평소 정 선생이 몸소 쓴 여러 분야의 책을 받아서 읽으며, 붓에서도 그런 좋은 안내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러워했는데, 마침내 우리 붓에서도 그런 좋은 책이 나왔으니, 이 일에 평생을 바쳐온 나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감격스럽다. 정 선생과 나는 마침 동갑이어서 친구처럼 몇 년 간 붓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정 선생을 통해 새롭게 구성된 내용을 보니, 막연히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충실하고 깊게 정리되어 정 선생의 맛깔난 입담과 엄청난 내공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붓이 전문 분야라서 어려운 용어 투성이인데도 한 번 펼치면 손을 놓을 수가 없을 만큼 재미있게 풀어 썼다. 이 정도만 해도 우리 붓의 실상을 이해하는 데는 충분하다고 자부한다. 이 책에 과분하게 묘사된 당사자로서, 지은이 정진명 선생에게 특별히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돌이켜보면 힘겨울 때마다 손을 잡아준 여러분들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그분들에게 갚기 위해서라도 우리 붓을 제대로 보존하는 데 남은 삶을 바칠 것을 약속드린다.
2017년 2월 증평 석필원에서 붓장 유 필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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