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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살인
지은이 : 천주교인권위원회 엮음
가  격 :   15,000원
ISBN : 89-7193-135-3(03340)
초판발행일 : 2001년 12월
1972년 10월 박정희대통령은 군사독재정권을 영속화시키기 위해 10월유신을 단행했다. 그것은 어둡고 광기어린 70년대의 서곡을 장식했지만, 1973년 10월 유신체제하 최초의 시위가 서울대학교에서 벌어지면서 박정권은 위기의식을 갖게 된다.

그해가 저물면서부터 재야 민주세력은 유신헌법의 개헌을 청원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기 시작했고, 학생들은 국민들의 민주화 여론에 힘입어 1974년 대투쟁을 준비하게 된다. 이에 박정권은 민주화의 여론은 탄압하고 학생들의 3,4월 공세를 꺾기 위해 긴급조치 1호를 선포하였다. 1974년 4월,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 전국의 대학생들이 총궐기하자, 박정희 정권은 이를 반국가단체인 민청학련의 책동으로 돌리고, 긴급조치 4호를 선포하여 대규모 검거 선풍을 벌였다. 그러나 민청학련은 조직이라기보다 선언문 말미에 적어 넣은 허구의 이름일 뿐이었다. 중앙정보부의 무차별 구타, 협박, 고문 속에서 이루어진 민청학련 사건에 대한 수사는 국민들의 반공심리를 자극하기 위해 인혁당이라는 가공의 조직을 만들어 북한의 지령을 받아 학생들을 조종했다는 각본을 만들어 내는데까지 이르렀다.

이 책 <사법살인>은 협박과 구타, 고문 속에서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의 진술과 증거가 어떻게 조작되어 군법회의에서 결국 사형, 무기 등 악형을 받기에 이르렀는가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분들의 회고와 취재, 증언들을 모아 정리한 것이다. 제1부에서는 70년대 중반의 정세와 민청학련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글들을 모았고, 제2부에서는 민청학련의 배후조종 세력으로 몰린 인혁당 관계자들에 대한 혹독한 고문과 조작된 증거의 진실을 밝히는 들들을 모았고, 제3부에서는 KBS 다큐멘터리에서 증언한 관련자들의 인터뷰 내용을 풀었다. 우리나라에 현대 사법체계가 확립된 후 가장 큰 규모로, 또 가장 혹독하게 자행되었던 국가 공권력에 의한 폭력을 낱낱이 밝힘으로써 자유와 민주, 그리고 인권 존중의 새 역사를 열어나가는데 이 책은 큰 이정표가 될 것이다.
 
         
1972년 10월 박정희대통령은 군사독재정권을 영속화시키기 위해 10월유신을 단행했다. 그것은 어둡고 광기어린 70년대의 서곡을 장식했지만, 1973년 10월 유신체제하 최초의 시위가 서울대학교에서 벌어지면서 박정권은 위기의식을 갖게 된다.



그해가 저물면서부터 재야 민주세력은 유신헌법의 개헌을 청원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기 시작했고, 학생들은 국민들의 민주화 여론에 힘입어 1974년 대투쟁을 준비하게 된다. 이에 박정권은 민주화의 여론은 탄압하고 학생들의 3,4월 공세를 꺾기 위해 긴급조치 1호를 선포하였다. 1974년 4월,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 전국의 대학생들이 총궐기하자, 박정희 정권은 이를 반국가단체인 민청학련의 책동으로 돌리고, 긴급조치 4호를 선포하여 대규모 검거 선풍을 벌였다. 그러나 민청학련은 조직이라기보다 선언문 말미에 적어 넣은 허구의 이름일 뿐이었다. 중앙정보부의 무차별 구타, 협박, 고문 속에서 이루어진 민청학련 사건에 대한 수사는 국민들의 반공심리를 자극하기 위해 인혁당이라는 가공의 조직을 만들어 북한의 지령을 받아 학생들을 조종했다는 각본을 만들어 내는데까지 이르렀다.



이 책 <사법살인>은 협박과 구타, 고문 속에서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의 진술과 증거가 어떻게 조작되어 군법회의에서 결국 사형, 무기 등 악형을 받기에 이르렀는가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분들의 회고와 취재, 증언들을 모아 정리한 것이다.제1부에서는 70년대 중반의 정세와 민청학련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글들을 모았고, 제2부에서는 민청학련의 배후조종 세력으로 몰린 인혁당 관계자들에 대한 혹독한 고문과 조작된 증거의 진실을 밝히는 들들을 모았고, 제3부에서는 KBS 다큐멘터리에서 증언한 관련자들의 인터뷰 내용을 풀었다. 우리나라에 현대 사법체계가 확립된 후 가장 큰 규모로, 또 가장 혹독하게 자행되었던 국가 공권력에 의한 폭력을 낱낱이 밝힘으로써 자유와 민주, 그리고 인권 존중의 새 역사를 열어나가는데 이 책은 큰 이정표가 될 것이다.







<한겨레신문 2001년12월8일>

인혁당ㆍ민청학력사건에 스러져간 ‘억울한 희생’ 증언

박정희 정원은 1975년 4월 9일 새벽 서도원, 도예종 등 이른바 인혁당 사건 관련자 7명과 민청학련 사건의 여정남 등 8명을 처형했다. 4월8일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바로 다음날이었다, 이는 법의 이름을 빌린 학살, 즉 법살이었다.

<사법살인 1975년 4월의 학살>은 당시 사건의 목격자와 관련자들의 생생한 육성을 통해 이 사건의 전모를 밝힌다. 1964년 중앙정보부는 인민혁명당(인혁당)이라는 대규모 지하조직이 국가 정복을 꾀했다고 발표했다.

언론사 기자와 학생 10여명을 피의자로 넘겨받은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들은 20일간의 수사를 통해 날조된 사실이며, 기소 가치가 없다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중앙정보부의 압력으로 이들은 징역1~3년 안팎의 선고를 받는 것으로 일단락 됐다. 10년 뒤, 긴급조치와 휴교령 등의 대학가 탄압에도 아랑곳없이 학생들의 유신타도 운동이 식을 줄 모르자, 박정희 정권은 다시 인혁당을 끌어들여 이른바 ‘민청학련 사건’을 조작한다. 인혁당이 김일성의 사주와 지원으로 전국민주청년 학생총연맹(민청학련)을 만들어 정부전복과 공산주의정원 수립을 기도했다는 혐의였다. 결과는 징역 20년부터 사형까지였다. 한승헌 변호사. 문정현 신부, 김지하 시인 등 22명이 지은이로 참여해 인혁당 사건부터 민청학련사건까지 조각 과정과 혹독했던 고문 등을 증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