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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곡자 (鬼谷子)
지은이 : 귀곡자 (鬼谷子) / 박용훈 옮김
가  격 :   20,000원
ISBN : 978-89-7193-179-0 (03150)
초판발행일 : 2007년 7월 10일
귀곡자(鬼谷子)는 왕후(王詡) 혹은 왕선(王禪)이라 불리는 전국시대의 사상가이다.
그는 당시 초나라 땅인 청계(淸溪)에 위치한 귀곡지방에 은거하여 스스로를 귀곡선생이라 하며 『귀곡자』란 저서를 썼다고 한다. 출생연도 등을 알 수는 없으나, 대략 B.C 3세기 경의 인물이라고 추측된다.

그는 종횡가(縱橫家)의 비조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제자 중에 가장 걸출한 인물로는 전국시대에 진(秦)나라와 대항하는 6국의 합종책(合從策)을 이루어 냈던 소진(蘇秦)과, 이와 반대로 6국을 진나라와 결합시키는 연횡책(聯橫策)을 주도한 장의(張儀)를 들 수가 있다(戰國策 참조). 또한 『손자병법』을 쓴 군사전략가 손빈(孫臏)과 방연(龐涓)도 그의 제자였다는 설(孫龐演義 참조) 이 있다.

이들은 모두 무형의 모략을 감추고 조용히(無爲) 있는 것 같으나, 항상 싸우지 않고 비용도 들지 않는 싸움(戰於不爭不費)을 강조한 사람들이며, 결과적으로 남들이 모르는 지혜를 가지고 남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였던 사람들인데. 『귀곡자』 속에 이미 이런 생각이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이 책은 난세의 오늘을 힘들게 해쳐 가는 현대인들에게 무한경쟁에서 살아남는 처세의 지혜를 제공할 것이다.
 
         
귀곡자(鬼谷子)는 왕후(王詡) 혹은 왕선(王禪)이라 불리는 전국시대의 사상가이다. 그는 당시 초나라 땅인 청계(淸溪)에 위치한 귀곡지방에 은거하여 스스로를 귀곡선생이라 하며 『귀곡자』란 저서를 썼다고 한다. 출생연도 등을 알 수는 없으나, 대략 B.C 3세기 경의 인물이라고 추측된다.

그는 종횡가(縱橫家)의 비조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제자 중에 가장 걸출한 인물로는 전국시대에 진(秦)나라와 대항하는 6국의 합종책(合從策)을 이루어 냈던 소진(蘇秦)과, 이와 반대로 6국을 진나라와 결합시키는 연횡책(聯橫策)을 주도한 장의(張儀)를 들 수가 있다(戰國策 참조). 또한 『손자병법』을 쓴 군사전략가 손빈(孫臏)과 방연(龐涓)도 그의 제자였다는 설(孫龐演義 참조)이 있다.
이들은 모두 무형의 모략을 감추고 조용히(無爲) 있는 것 같으나, 항상 싸우지 않고 비용도 들지 않는 싸움(戰於不爭不費)을 강조한 사람들이며, 결과적으로 남들이 모르는 지혜를 가지고 남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였던 사람들인데. 『귀곡자』 속에 이미 이런 생각이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귀곡자』의 주요 내용은 주로 유세가(有說家)들이 많이 이용하였을 구체적인 대화의 기법이고, 이 유세를 궁극적으로 성공시키기 위하여 필요한 것들을 다각도로 다루고 있다.
즉 무엇보다도 천하의 대세를 보고 누가 유리한지를 먼저 판단하여 유세의 대상을 선정해야 한다는 것(1.패합)과, 상대방의 반응을 정확히 알아내는 방법(2.반응), 유세를 해야 할 군주의 주위에 정이 통하는 사람을 미리 만들어 두어야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만약 일이 실패해도 목숨이 위태롭지 않다는 것(3.내건), 유세 중에 이견과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미리 알아 그 틈새를 미리 봉하는 방법(4.저희), 때로는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는 척 하면서 협박도 불사해야 한다는 것(5.비겸), 한번 거스른 것을 바꾸어 다시 천하의 대세에 추종하는 방법(6.오합), 천하의 정세와 제후들의 실제 정세를 알아내는 법(7.췌편, 8.모편), 유세 시에 사용해야 할 말의 구체적 종류와 그 특징(9.권편), 이 유세가 받아들여져 구체적으로 천하를 다스릴 모략의 종류와 그 성질(10.모편), 바야흐로 결단을 내려야 할 경우와 그 결단의 어려움(11.결편), 드디어 천하를 제패한 군주가 지녀야 할 덕목(12.부언)등을 다루고 있다.
이외에도 13-전환(轉丸)과 14-겁란(刦亂)이 있었다고 하나 유실되어 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귀곡자는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자를 성인(聖人)이라고 하면서, 그들의 행동을 음(陰)과 양(陽)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는데, 이 책의 뒤에 붙은 본경음부 일곱 편과 (本經陰符 七篇) , 중경(中經) 에는 이런 음양에 대한 것이 제법 이론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귀곡자 본인에 대한 분명한 기록이 없는 관계로 이 책 모두가 후인의 위서라고 매도되기도 하나, 뒤의 글들이 『귀곡자』 본문과 어휘가 확연히 틀리는 바람에, 적어도 그 글들은 후세 도교 쪽의 저작이 아닌가 하는 것이 옮긴이의 추론이다.

기본적으로 『귀곡자』에 씌어진 것은 천하에 유세하여 천하를 안정시키는 방법으로서, 세상사는 이런 무형(無形)의 방법(道)들을 미리 알아, 미리 판단하고, 미리 결단하는 성인만이 성공시킬 수 있으나, 남들은 그들이 성공한 이유를 모르므로 아무 일도 안하고(無爲) 성공하였다고 한다.
이런 도(道)와 무형(無形), 무위(無爲)라는 용어로 보아 귀곡자의 사상이 도교사상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본문에서도 오직 인의예지 (仁義禮智)만을 말하는 유가들을 비꼬면서, "다만 중정(中正)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귀곡자』의 이런 도가(道家)적 성격으로 인해 이 책은 후일 유학자들이 중심이 된 세계에서 󰡐잡가󰡑로 분류되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이것은 우리나라 학계에도 그대로 이어져 아직까지 제대로 된 한글 번역본 한 권도 없는 지경이 된 것은 커다란 아쉬움이 아닐 수 없다.

대학에서 동양사를 전공한 것을 제외하고는 체계적인 한문 교육을 받지 못한 옮긴이가 이 책의 번역에 착수하게 된 계기는 학민사 김학민 사장의 권유 때문이었다.
우연히 손에 넣게 된 중국어 간자체 번역서를 텍스트로 했는데, 결과적으로 이 책과 후일 다시 접하게 된 다른 중국 간자체 번역서들도 상당한 부분이 오역이거나 의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두 일일이 원문과 대조하면서 번역을 진행하게 되었고, 각 편의 짧은 해설도 옮긴이가 다시 쓸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처음에 참조하려고 했던 중국 간자체 번역서에도 오역이 너무 많았고, 또 한글 번역본도 전혀 없었으므로 이 책의 번역은 전적으로 옮긴이의 책임하에 이루어진 것임을 밝힌다. 따라서 이 책에서 잘못된 부분은 완전히 옮긴이의 책임이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의 귀곡자 연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랄뿐이다.

2007년 5월
박 용 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