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도서안내 > 교양서/청소년도서
 
고급 문장 수업
지은이 : 이병갑 *
가  격 :   15,800원
ISBN : 978-89-7193-251-3 03710
초판발행일 : 2018년 8월
요즘 세계적으로 K-POP이 큰 인기를 끌면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세계의 많은 언어 중에서 배우기 어려운 언어의 하나가 한국어이다. 사실 한국인이라도 한국어의 미세한 쓰임 차이를 제대로 짚어내기는 쉽지 않다. 글을 써 놓고 보면, 모국어인 한국어가 어려운 언어라는 것을 더욱 실감한다.
예컨대 우리는 ‘법안이 심의 중이다’나 ‘치료제가 연구 중이다’라는 표현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지만, 이를 타동사문 ‘법안을 심의 중이다’와 ‘치료제를 연구 중이다’와 비교하면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책의 설명에 따르면 ‘중이다’는 ‘…하는 중이다’의 준말로 인식되기 때문에 그 앞에 목적어가 와야 자연스럽다.
흔히 ‘선생님이 오신다’를 높여서 ‘선생님께서 오신다’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예쁘시다’라는 표현은 어떨까. 이는 과공이 낳은 비문이다. ‘께서’는 ‘오신다/가신다’ 등과 같은 동사와 잘 어울리고 ‘착하시다/예쁘시다’ 등과 같은 형용사와는 잘 안 어울린다.
우리는 일상에서 별 생각 없이 ‘이 커피는 쓴 맛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글로 쓸 때는 ‘이 커피는 맛이 쓰다’나 ‘이 커피 맛은 쓰다’로 바꾸는 게 좋다. 왜 그럴까. 우리말 문장은 크게 ‘무엇이 어찌한다’, ‘무엇이 어떠하다’, ‘무엇은 무엇이다’의 세 유형으로 나뉘는데 ‘이 커피는’으로 시작되는 문장은 ‘무엇이다’ 꼴로 쓰이기 어렵다. 즉 ‘이 커피는 무엇이다’보다는 ‘이 커피는 어떠하다’가 더 자연스럽게 와 닿는다.
이번에는 ‘죽 쑤어서 개가 먹었다’와 ‘죽 쑤어서 개를 주었다’를 비교해 보자. 전자는 비문이다. ‘-어서’로 연결되는 말은 앞 절의 주어가 뒤 절의 주어 노릇까지 하는데 이 문장은 뒤 절에 다른 주어가 왔기 때문에 문맥이 안 통한다.

이 책은 30년간 신문사에서 교열 작업에만 매달려 온 베테랑 교열 전문가의 ‘글다듬기 비법’을 정리한 것이다. 저자는 평소 업무 중에 발견한 비문, 악문 등을 177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그리고 그 문장이 어색한 이유를 다양한 근거를 통해 제시한 뒤 읽기 편하고 의미도 잘 통하는 문장으로 바꾸는 방법을 안내한다.

예컨대 주술 관계의 경우 ‘그는 남들이 손가락질을 했다’보다는 ‘그는 남들한테 손가락질을 당했다’로 표현하기를 권한다. 전자는 ‘그는’과 호응하는 서술어가 확실히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는 것. 또 ‘영업이익이 1억 원을 달성했다’의 경우 ‘영업이익 1억 원을 달성했다’나 ‘영업이익이 1억 원에 달했다’ 등으로 표현하면 더 부드러워진다.
조사와 어미도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글의 맛과 의미가 달라진다. ‘농부가 산길을 걷는다’와 ‘농부는 산길을 걷는다’, ‘산에 오른다’와 ‘산을 오른다’의 의미 차이를 알고 구별해 쓰는 게 좋다고 한다. 이 밖에 ‘너무 오만의 극치다’라는 어느 정치인의 말을 예로 들면서 부사와 부사어가 다른 말과 어떻게 결합하는지 명쾌하게 설명하기도 한다.

이 책은 어법을 떠나 읽기 편한 문장에 관심을 기울인다. 예컨대 ‘등록금 동결을 한다’보다는 ‘등록금을 동결한다’로 쓸 것을 권한다. 그러면서도 ‘실내 정돈이 잘됐다’와 ‘실내가 잘 정돈됐다’는 뉘앙스가 다르므로 상황에 맞게 골라 써야 한다는 노파심도 드러낸다.
이 밖에 최근 기사체 문장을 중심으로 ‘퇴화하다’와 ‘퇴화되다’, ‘개막하다’와 ‘개막되다’, ‘소개하다’와 ‘소개시키다’가 혼용되고 있는데, 이 현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어느 표현을 택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지향하는 바는 독자의 시각에서 이해하기 쉬운 문장, 술술 읽히는 문장을 만드는 것이다. 특히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사람은 독자에 대한 배려로 표현의 세세한 부분에까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그 대표적인 예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 글을 꼽는다. 노 전 대통령은 유서의 서두를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의 고통이 너무 크다’로 썼다가 나중에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로 바꾸었는데, 그 이유는 ‘말미암아’와 호응하는 말 ‘받은’을 넣기 위해서였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생을 마감하는 비장한 순간에도 자신의 글에 책임을 지고자 한 고인의 글쓰기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177개 핵심코드를 익히면 전문적인 글쓰기를 지향하는 학자, 미디어 종사자, 기획자, 칼럼니스트, 작가 지망생들은 물론, SNS로 소통하는 일반인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책 머리에

문법 학계에서는 ‘돈을 천 원을 주웠다’라는 표현을 목적격 중출 구문이라 하여 우리말의 특수한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이 우리말의 특수한 현상이라면 편히 써도 된다는 뜻이건만,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주저스러운 면이 있다. 예컨대 ‘철수가 영수를 어깨를 쳤다’보다는 ‘철수가 영수의 어깨를 쳤다’가 더 낫지 않은가.
둘 중 어느 것을 택하든 의사소통에 문제는 없다. 더구나 우리는 뜻만 통하면 된다는 인식이 강한 편이어서 글의 완성도나 유려함을 평가하는 눈이 비교적 흐릿하다. 문법 개념도 희박해서 비문조차 너그럽게 수용하는 경향이 짙다. 남의 나라 말인 영어는 전치사 하나도 꼼꼼히 따지면서 말이다. 거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간 학교에서 글쓰기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글쓰기를 따로 배우고자 해도 지침으로 삼을 만한 텍스트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을 잘 쓰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특히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사람은 표현의 세세한 부분에까지 관심을 기울여 다듬고 또 다듬는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의 머리에 가장 강렬하게 남는 사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 글이다. 유서의 한글 파일 제목은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의 고통이 너무 크다’이고, 본문 문장은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이다. 아래아 한글의 파일 생성 원리로부터 유추하자면 처음엔 제목과 본문이 같았는데, 나중에 본문을 고친 것이다. 삶을 마감하는 비장한 순간에도 ‘말미암아’와 호응하는 말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받은’을 추가한 것이다.
필자는 가끔 언론사 수습기자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강의를 하는데, 그때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에 얽힌 사연을 소개하면서 ‘(그 분이) 왜 고쳤겠는가’를 묻는다. 제대로 답변하는 사람은 열에 하나가 안 된다. 소위 언론고시를 준비하면서 글쓰기 관련 책을 많이 보았겠지만, 이처럼 간단한 문제를 풀어 주는 책은 찾기 어렵다.
필자는 근 30년간 신문사에서 교열 일을 해 왔다. 남의 글을 조금 더 매끄럽게 다듬는 작업이다. 하지만 그 일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았다. 남의 글에 손을 댄다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다. 좋은 글과 나쁜 글을 구별하는 안목이 있어야 하고, 나쁜 글이 안고 있는 문제점, 곧 어색함을 자아내는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된 처방은커녕 자칫 더 나쁜 문장을 만들 수도 있다. 무심코 조사 하나 바꾸었다가 글의 의도가 달라져 글쓴이의 항의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런 조심스러운 과정을 거쳐 얻은 필자의 ‘글다듬기 노하우’가 이 책에 담겼다. 일상의 글에서 흔히 발견되는 비문, 악문, 그리고 정문이라 하더라도 더 매끄러운 대안을 찾아보면 좋을 문장을 177가지 유형으로 추렸다. 그리고 유형별로 대표적인 문장을 제시하고 그 문장이 어색한 이유를 밝혔다. 사실 어색한 이유를 논리적으로 밝히기는 쉽지 않다. 논문 등 참고문헌이 많기는 하지만 실제 언어생활에서 부닥치는 현실적인 의문을 풀어주는 데는 한계를 보인다. 이 때문에 많은 부분을 필자의 직관에 의존해야만 했다. 이 경우 필자 스스로도 타당성을 확신하지 못하고, 혹 견강부회한 것은 아닌지 싶어 마음이 오그라드는 측면이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내용 중 절반가량은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2017년에 제작한 <올바른 기사문장론>에 실려 있다. 이는 필자가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각 언론사 수습기자들을 상대로 강의했던 ‘글 바로쓰기’의 원고를 정리하여 언론인 교육을 위한 교재로 만든 것이다. 여기에 분량을 더 추가하여 일반인들도 접할 수 있도록 재구성한 것이 이 책이다. 따라서 예문도 신문 기사에서 발췌한 것이 많으며, 이 때문에 논의의 방향도 신문 언어 쪽에 치우친 측면이 있음을 고백한다.
비국어 전공자가 어설픈 경험과 직관에만 의존해 한국어 관련 책을 낸 것이니 참으로 조심스럽다. 국어 전공자 및 국어학계에는 큰 누가 되지 않으면서, 더불어 좋은 글을 쓰고자 노력하는 일반인들에게 다소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2018년 8월
이 병 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