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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횡단 한자여행 古今橫斷 漢字旅行
지은이 : 김준연
가  격 :   15,000원
ISBN : 978-89-7193-182-0 (03710)
초판발행일 : 2008년 1월 30일
갑골문부터 簡化字까지 흥미진진한 漢字이야기 56편


인도, 중국, 이집트 이 세 나라의 공통점 두가지는 무엇일까? 이 세 나라 모두 5천년 전에는 문명국(文明國)이었고, 현재는 문맹국(文盲國)이라는 점이다. 특히 인도에 이어 세계 각국 문맹률 순위 2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두 자릿수 경제성장과 더불어 급증하는 문맹자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중국의 문맹률이 왜 이렇게 높을까? 당연히 한자 때문이다. 한자는 틀림없이 중국어 습득 과정에서 큰 난관의 하나다. 한자를 공부하지 않으면 당장 읽고 쓰는 데 큰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고, 이는 듣기와 말하기 학습에도 지장을 준다.
사실 언어학습과정을 놓고 보면 한글을 배우는 것과 한자를 배우는 것의 효용은 한국어와 중국어에서 거의 똑같다. 그러나 한글은 수십 개의 자모에 불과하고 한자는 수만 개에 달한다. 수만 개 한자의 음과 뜻을 외라는 것은 역대 명화(名畵) 수만 점의 화가와 제목을 외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때로는 똑같이 ‘그리기‘까지 해야 한다면…….

그렇다면 한자의 수는 모두 얼마나 되고, 그 가운데 몇 개나 알아야 할까? 현재까지 발견된 갑골문의 한자는 대략 5천자다. 후한(後漢) 때 만들어진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모아진 것이 9,353자였고, 청나라 때(1716년)의 『강희자전(康熙字典)』은 47,035자를 수록했다.
이후로도 한자의 수는 꾸준히 증가해 1994년에 출판된『중화자해(中華字解)』에는 85,568자가 수록되었고, 한자정보처리업체인 베이징궈안자신설비공사(北京國安資咨訊設備公司)의 한자 뱅크에는 역대 최다인 91,251자가 저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 한자를 자국의 문자로 사용하는 중국인은 일상생활에서 대략 몇 자를 알아야 할까? 『설문해자』 서문과 『한서(漢書)』「예문지(藝文志)」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에 9천 자를 외우고 쓸 수 있으면 ‘사(史)‘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사‘를 현재의 사무관 정도에 해당하는 관직으로 본다면 행정고시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9천자를 알아야 했던 것이다. 『설문해자』에 수록된 한자가 9,353자이니 자전에 나온 한자 중 모르는 자가 없어야 된다는 말이다. ‘사서삼경‘에 쓰인 글자 수가 3천 자 미만이고, 이백(李白)두보(杜甫)한유(韓愈)백거이(白居易) 등도 5천 자 이상을 구사하지 못했는데, 9천 자를 커트라인으로 삼았다면 다소 과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현대에 와서는 요구 수준이 많이 낮아졌다. 중국 정부가 1988년에 발표한 <현대한어상용자표(現代漢語常用字表)>에 수록된 한자 수는 상용한자 2,500자와 차상용한자 1,000자를 합쳐 3,500자에 불과하다. 전체 한자 9만여 개의 4%만 알아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는 뜻이다. 한나라 때의 ‘사‘와 같은 전문직 종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한자응용능력시험‘ 1급 기준도 4,500~5,500자 가량이다.

이처럼 한자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인들에게는 말을 표기하는 도구로써 필수적으로 익혀야 되는 대상이지만, 표의문자로서 글자 하나하나를 따로이 외워야 하는 엄청난 공력이 들어가는 체계이다.
그리고 9만여 글자중 일상적 삶을 누리는데는 4%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불필요한 비경제적 문자체계이다. 그렇다면 속도와 간편, 실용성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나머지 96%의 한자 운명은 어떻게 되어야 할까?
그러나 한자 하나하나에는 그것을 사용했던 사람들의 생활양식, 인간과 사물에 대한 종합적 이해, 과거에 대한 역사적 인식과 미래에 대한 통찰력 등을 두루 보여주는 문화가 들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자문화권에 속해왔던 우리로서도 우리의 역사, 우리의 뿌리, 우리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한자를 도외시할 수 없는 근거가 남는 것이다.
당연히 이 책은 한자 또는 한문을 익히는데 목적을 두고 있지 않다. 한자의 탄생과 변화, 표의문자로서 한자의 형상화 과정, 한자에 개입된 인간의 삶, 한자 디자인의 문화와 한자 컴퓨터 입력 등 한자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모은 한자문화인류학, 또는 한자사회사의 범주에 들 수 있는 책이다.
중문학과 교수로서 강의시간에 ‘民‘자의 유래를 설명해 주려고 자료를 찾아보다가 이 ‘백성 민‘자가 침으로 눈을 찌르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고, 그 본래의 뜻이 ‘노예‘였다는 사실을 알면서 느낀 전율이, 중국 대륙 곳곳을 누비고 중국사 수천년을 시간 여행하면서 이 책을 쓰게 했다는 머리말에서 저자의 학문적 진지성과 치열성이 깊게 묻어난다.
 
           
한자에 관한 원고를 마무리하고 나니 내가 무슨 바람이 불어 이렇게 주제넘은 일을 시작했던가 하는 상념에 잠기게 된다.
필자는 전공이 중국고전문학이어서 그간 비교적 한자와 가깝게 지내왔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한자에 관한 전문적인 연구는 필자의 전공과는 다른 문자학의 범주에 속한다. 그런 까닭에 이전에 이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한 적도 없고, 심지어 학부나 대학원에서 관련 과목을 수강한 일도 없었다. 그런데 대학에서 교양한문 과목을 꾸준히 맡아 가르치고 교재까지 펴내고 나니 참된 교육을 위해서는 얼마간 전문적인 지식을 더 쌓아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강의 시간에 ‘民‘자의 유래를 설명해주려고 자료를 찾아본 것이 출발점이었던 듯하다. 필자는 그때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백성 민‘자가 침으로 눈을 찌르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고, 그 본래의 뜻은 ‘노예‘였다는 사실을. 감전이라도 된 느낌이었다. 분명 ‘대한~민국‘의 ‘민‘자가 분명한데 말이다. 얼마간 한자에 대한 지식이 있다는 그간의 알량한 자부심이 통째로 흔들렸다.
2006년 1월, 필자는 기어코 중국 문자학의 본산이라 할 안양시(安陽市) 소둔촌(小屯村)을 찾았다. 왠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자의 역사를 제대로 짚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겨울 중원(中原)의 매서운 바람을 동행하는 이도 없이 혼자 맞기는 했지만,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필자를 반겨준 구덩이 속의 갑골 더미가 몇 권의 책 이상의 말을 단숨에 들려주는 듯했다.
안양에서 돌아온 후로 더 힘을 내 고금을 아우르는 관련서적들을 탐독해나갔다. 어느덧 서가 하나가 한자 관련 서적으로 채워졌고, 여기저기서 스크랩한 자료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갔다. 취미 삼아 공부하는 것은 어찌 이리도 마음이 가볍고 재미도 있는지, 한 해를 꼬박 이렇게 보냈다.
이렇게 유쾌한 ‘한자 여행‘을 다니는 동안 새로 얻은 지식이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한자 하나하나에 문화가 고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큰 수확이었다. 한자는 한갓 말을 표기하는 도구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사용했던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생활양식, 인간과 사물에 대한 종합적 이해, 과거에 대한 역사적 인식과 미래에 대한 통찰력 등을 두루 보여주는 ‘문화의 보고‘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에 담은 내용은 필자가 문헌과 현장을 오가면서 한자에 대해 얻은 짤막한 지식들이다. 전문적으로 이 분야를 공부한 사람이 아닌 까닭에 아마추어들이 흔히 저지르는 잘못이 적지 않을 것이다. 혹 사실과 다르거나 잘못된 설명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필자의 책임이다. 책 말미에 필자가 참고한 책과 논문들을 부기하니 강호제현의 아낌없는 질정을 바란다.
이렇듯 부족한 책을 낼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신 분들께 감사를 표해야 마땅하겠다. 먼저 같은 과에 재직 중인 이재훈 선생님께 감사를 드린다. 선생님은 경학과 훈고학의 대가로서 문자학에도 조예가 깊어 이 책의 초고를 읽고 일일이 문제점을 지적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도움이 될 만한 여러 참고문헌도 기꺼이 소개해주셨다. 지난 여름 자료 조사를 위해 북경의 유리창 일대를 함께 누볐던 추억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학민사 관계자 여러분께도 감사드린다. 특히 김학민 사장님은 예처럼 필자의 원고를 선뜻 받아주셨고, 필자가 미처 챙기지 못한 신문 기사까지 스크랩해주시며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
한 권의 책이 나온다는 것은 한동안 가까운 이들을 멀리 하고 컴퓨터와 가까이 지냈다는 뜻이리라. ‘한자 여행‘에 푹 빠진 아빠를 참고 기다려준 딸들 혜원, 혜민과 언제나 바쁜 남편을 사랑으로 감싸주는 아내 동희에게도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