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무술을 배워보고 싶어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PC통신의 글들을 읽곤 하던 때가 생각난다. 무술에 입문하기에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 굳어서 잘 움직이지 않는 팔과 다리를 열심히 스트레칭해 가며, 한 살이라도 젊은 사람들 옆에서 힘겹게 발차기를 하면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나아가던 것이 꽤 시간이 흘렀다.
처음 무술을 배울 때에는 내가 이렇게 깊이 몰입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였다. 단지 평소 활기차게 생활할 수 있도록 몸을 단련시키는 요령 몇 개를 습득하고, 그 나이 먹도록 여전히 미련이 남아 있던 약간의 ‘폼생폼사’만 충족하면 되겠거니… 그리고 그저 싸움하는 방법을 체육관에서 가르치는 거려니 했는데, 껍질을 한 거풀 벗겨 본즉 그 안에는 개인적으로 너무나 매력적인 여러 가지 요소들이 한데 뒤엉켜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말로 설명하고 나면 왠지 감흥이 사라져 버리곤 한다. 아마도 무술의 언어는 말이 아닌 몸이기 때문일 것이다. 몸으로 전달하고 몸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말보다 훨씬 더 깊고 넓은 세계를 직관할 수 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비유가 이런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가지라는 점이다. 또 그 손가락들이 모두 하나의 달을 가리키고 있다. 모든 손가락이 하나의 달을 가리키고 있다면 그 달은 어떤 진실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무술은 달을 가리키고 있는 여러 손가락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무술 그 자체가 달일 수는 없으며, 달에 도달하기 위한 안내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무술은 참으로 모순적이다. 태생적으로 폭력성을 간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화의 논리도 같이 갖고 있다. 단순히 싸움 기술에 불과했던 무술이 때로는 아름다움의 영역을 건드리기도 하고, 인간의 정신세계를 논할 때도 있다. 더 이상 폭력의 그릇 안에 무술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어찌 무술에 매료되지 않을 수가 있으며, 그 구체적인 것을 자신의 몸으로 실험해 보고 싶은 충동이 안 생길 수 있을까?
이 글들은 지난 10여년간 내가 무술을 수련하는 도중에 틈틈이 썼던 것들을 정리한 것이다. 논문처럼 처음부터 체계를 잡고 쓴 글이 아니다 보니 일부 내용의 중복이 발견되기도 하는데, 문맥의 흐름을 위하여 굳이 삭제하지 않은 부분도 있고, 또 강조의 효과도 있으리라 싶어 놓아 둔 부분도 있다.
그리고 나의 무술 수련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것이므로 무술에 대한 생각들도 계속해서 변화, 발전해 가고 있다. 곧 이 글들은 확고부동한 어떤 진실을 적어 놓았다기보다는 한 무술 수련자가 걸어왔고 또 앞으로 걸어가려고 하는 도상에서 적은 메모같은 것이라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 당연히 논문이나 무술 교범도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이 오늘날 무술의 다양한 모습을 조금이나마 보여줄 수 있다면 큰 기쁨일 것이다.
이 책은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첫 번째에서는 무술을 수련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던 개인적인 의문들을 정리하였고, 두 번째에서는 실제 무술 수련을 해 본 체험담과 기타 도움이 될 만한 구체적인 방법들을 정리하였고, 세 번째는 현재 한국에서 배울 수 있는 무술들을 위주로 개인적인 생각을 적었고, 마지막 네 번째에서는 전통과 전통무예에 대한 몇 가지 생각들을 밝혀 놓았다.
주위의 많은 도움이 없었다면 이 책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 나를 무술의 길로 이끌어 주신 대한택견협회 가족들과 지금도 같이 운동하고 있는 서울 광진구 택견전수관 회원들, 그리고 태극권뿐 아니라 여러 무술에 대한 생각들을 공유하였던 임사부, 이론적 틀을 정립하는 데 큰 힘이 되었던 한국무예연구소 여러분들, 그리고 기꺼이 책을 펴내 주신 학민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