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보도자료
 
상하이에서 악녀가 되다
지은이 : 최란아
가  격 :   11,800원
ISBN : 89-7193-174-4 (03900)
초판발행일 : 2006년 05월
상하이는 상하이다!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고 전통과 첨단이 부딪치고
과거와 미래가 뒤섞인 중국이 아닌 중국 도시이야기!



상하이는 중국이 아니다. 상하이는 다만 상하이일 뿐이다. 아편전쟁에서의 패배로 일찌감치 개방되어 중국인과 일본인, 유대인, 서양인들이 뒤엉켜 살았던 상하이. 공산혁명 이후 굳게 닫혀 있다 다시 개방된 그곳에서 나란히 성장하고 있는 외국인과 중국인의 물과 기름 같은 사회. 그곳에서 지금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전 세계 언론들이 특집으로 다루고 있는 중국,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나 오히려 그러한 속도가 위협이 되는 중국, 그 중에서도 가장 변화가 많고 개방되어 있는 상하이의 생활을 ‘네덜란드 엿보기‘의 저자 최란아가 가정주부에서 전시회 큐레이터로 일하게 되기까지 겪은 여러가지 우습고도 고달팠던 에피소드들로 풀어간다. 하룻밤이 지나면 새 건물, 새 호텔, 새 음식점, 새 화랑들이 들어서는 만두 같은 상하이. 속이 꽉꽉 채여 이제 터질 것 같으나 새로운 모습으로 날마다 성장한다.
오랫동안 알았던 것 같으나 들춰도 들춰도 모르는 이야기들만 나오는 상하이. 그곳에 가서 악녀가 된 이유는 무엇인지… 잠에서 퍼뜩 깨게 만드는 폭죽, 화약 발명의 나라답게 발달한 폭죽문화. 이사를 했을 때도, 상점을 개업할 때도, 사업을 시작할 때도, 명절에도 그들은 폭죽을 터뜨린다. 돼지머리보다 강력하고 고사보다 더 효과 있는 폭죽 터뜨리기. 악녀 훈련은 소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자동차 크락숀 소리, 전화 받는 소리, 침뱉는 소리, 싸움하는 소리… 거기에다 새치기는 아무리 연습을 해도 당해낼 수 없는 국민운동이다. 그걸 이기려다보면 제 2단계의 악녀가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쟁하며 살아야 하는 건 요주의 인물로 홍콩 신문도 인정하는 상하이 여자들. 똑똑하고 아름다우며 시간 활용 잘하는 능력 있는 그녀들은 센스 있는 좋은 친구이면서 동시에 상대적으로 순둥이인 외지 여자들의 경계 대상이 된다. 뛰어난 학벌과 외모로 남자의 위에 군림하는 여자들.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남에게 소리를 지르는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으나 상하이에 살면서 의식이 완전히 변한 저자. 새치기를 하는 사람을 있는 힘껏 밀치고, 두 번 말을 반복하면 소리를 지른다. 빈 의자를 차지하려는 사람과는 끝까지 싸워서 의자를 쟁취하고 택시를 잡을 땐 버젓이 남의 택시를 가로채고… 줄이 따로 없는 유럽에선 오히려 불안감에 온 상점을 차지하느라 번잡스럽다. 상점에 들어섰을 때 먼저 와 있던 사람들의 얼굴과 몸의 특징을 보고 또 보고, 그래서 실수가 없도록 스스로 다짐한 뒤, 뒤에 오는 사람들의 길을 은근히 몸을 부풀리고 팔을 양 옆으로 벌리며 막고 서서, 그들이 자신보다 앞이라고 생각되는 영역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본인의 차례가 점잖고도 당연하게 되어 물건을 사게될 때까지 혼자만의 숨가쁜 줄서기에서 넉다운되는 슬픈 반전.
이제쯤 상하이 생활을 청산하고 어디론가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상하이엔 쉽게 손털고 뜰 수 없는 매력이 있고, 보물이 있다. 상하이는 이제 저자에게 익숙한 보금자리로 자리잡아 버렸다. 상하이의 인구 역시 빠지기는 커녕 새록새록 외국인들의 수만 늘어나고… 상하이의 한국인 수는 이제 4만 명을 넘었고, 본국에서 흥미 있는 일이 별로 없는 많은 유럽과 미국의 고급인력들이 더욱 많은 숫자로 상하이로 들어온다. 그들에게는 폭풍우와 같은 중국의 현대사에서 세상의 모든 것이 함께 뭉쳐 돌아가는 상하이 생활이 도전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상하이어가 토박어지만 이제 상하이엔 중앙정부에서 추진하는 푸통화(표준어) 외에도 각 지방의 방언과 영어, 일본어, 한국어 등이 본지어 못지 않게 난무한다. 한민족 한국가 한언어의 나라에서 온 한국인으로서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다민족 다국가 다언어의 상하이, 요지경 같은 상하이에서의 생활이 책 속에 담겨 있다.
 
         
찬 바람이 얼굴살을 후비던 어느 겨울날, 익숙한 냄새에 이끌려 거리에서 군고구마를 샀다. 바가지를 쓰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해 하며 비닐 봉지에 고구마를 담아주는 아저씨 손톱에 낀 검뎅에 질겁을 하고 있었는데, 머리통만한 고구마 몇 알에 5위안이라 해서 깜짝 놀랐다. 5위안이면 650원인데… 그 걸로 하루종일 밖에 서 있는 값이나 나올까… 군고구마 몇 알을 사는 내게 아저씨가 건네는 미소가 고구마보다 더 따끈했다. 바가지를 쓰지 않을까 옹졸한 마음이었던 것이 부끄러웠다.
그 날, 비닐 봉지를 들고 돌아서며 군고구마 냄새와 관련한 여러 가지 어린 날의 추억에 눈물이 어렸다. 미지의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몸부림치던 날들. 나는 방바닥에 누워서 세상을 여행하곤 했다. 책을 읽으면서, 끄적거리면서… 훗날에 나는 홀로 세상을 여행하고, 베푸는 일에 참여하고, 그 경험들을 모아 책으로 내고자 했었다. 처음 내가 한국을 떠났던 것도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출발이었다. 한국은 떠났다. 떠나는 건 간단했다. 그러나 애초에 쓰고자 하는 책은 아직까지 쓰지 못했다. 계획했던 경험에서 다른 쪽으로 향로를 바꾸어 왔기 때문이다.
대신 난 상하이에서 바쁘고도 단순하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책을 읽을 시간도, 방에 누워 공상을 할 시간도, 혼자 있을 시간도 없이. 책을 읽지 않는 나 자신이 낯설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분명한 핑계임에도 매일매일이 숨돌리기 바쁘게 돌아가지 않는가. 끝이 나지 않는다. 이렇게 흘러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뚜렷한 방향도 없이 바쁘기만 한 게 좋은 일인지 알 수 없다. 나는 왜 한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걸까, 자책을 해보지만 집중을 하고 싶어도 이제 그럴수가 없다. 너무나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터지고, 내 손에는 그 일들과 연결된 끈이 쥐어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상하이 파워‘라고 부른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 것.
여러 가지 일에 연루되어 살고 있다. 애초에 나 스스로 뛰어들기엔 불가능한 것들에도.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곳, 그곳이 상하이다. 나의 에너지는 여러 가지 색깔로 각각의 얇은 막에 싸여 내 안에서 조용히 숨어 지내다 기회를 만나면 폭죽처럼 튀어나온다. 내 안에 그 많은 에너지들이 있었는지 몰랐다. 그것을 끌어낸 것이 상하이다.
처음 상하이에 와서 어리둥절하던 마음, 절대로 1년 이상 견디지 못할 거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이던 날들, 모든 것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오답같던 날들. 그런데 친구들이 생기고, 갈만한 곳이 어디인지 알게 되고,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어디에서 구할 수 있는지, 어떻게 가격을 흥정할 수 있는지 알게 된 지금은 상하이가 오히려 푸근하다. 사랑하는 일도, 미워하는 일도, 용서하는 일도 하룻만에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상하이에서 만난 모든 인연들이 소중하다. 어렵고 답답하고 흥겹고, 때로 미친듯한 시간들을 함께 보낸 사람들. 어딘지 모르게 좁은 항로를 나와 함께 가고 있는 완춍과 쒸보, 독수리 눈으로 찍은 소중한 사진들을 기꺼이 건네준 정희와 규민, 아무에게나 카메라를 들이밀어 파파라치라는 별명을 얻은 쟝종매이, 전시회가 있을 때마다 아낌없이 찬조를 해주시는 이화원의 유선자 사장님과, 친구네 집에 가는 길은 먼 법이 없다는 진리를 가르쳐준 영혼이 아름다운 그녀에게 사랑을 보낸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늘 반가운 일이다.